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루세이더 킹즈 2/개요 (문단 편집) == 가문 점수 == CK2는 국가를 번성시키는 게임이 아닌 가문을 번성시키는 게임이기 때문에 국가라는 개념이 다른 게임들처럼 고정적인 개념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 왕의 봉신으로 스코틀랜드의 왕가와 계속해서 혼인을 맺었는데 어느 날 정신차려보니 스코틀랜드의 후계자가 자신이 되어 있게 될 경우 플레이어는 잉글랜드의 봉신에서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권리가 아닌 의무기 때문에 거부할수가 없다는게 더더욱 혼란을 준다.] 다른 전략 시뮬레이션처럼 국가를 진영과 동일한 관점으로 보는 사람들이 이 점 때문에 초반에 혼란을 느끼기 쉽다. 기본적으로 영토를 가진 백작 이상의 인물들만이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허용되는 만큼[* 다만 공화국(The Republic) DLC를 구매하면 공화국의 도시 귀족가문으로 플레이가 가능해지는데, 도시귀족은 유일하게 남작급 작위면서도 플레이 가능하다.], 다른 게임의 '국가'라는 단위가 '가문'이라는 단위로 대체된 형태라고 이해하면 쉽다. 실제로 전쟁 등으로 현재 보유한 영토를 전부 잃는 순간 가문내 인물들이 영토나 작위에 대한 클레임(명분)을 지닌 채 생존해있거나, 후계자가 살아남아도 게임 오버가 된다. 당연히 영토가 아예 없는 몰락귀족이나 천민으로 시작해서 플레이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편법으로 직할령이 여러 개인 플레이 가능 인물로 몰락귀족이나 평민에게 영토를 수여한 뒤 콘솔로 플레이 캐릭터를 변경하거나 저장하고 영토를 수여받은 인물로 다시 시작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 가문 점수 플레이어가 사망하면 그 캐릭터가 쌓아둔 명예와 신앙심이 가문의 점수로 더해지며, 적법한 후계자로 이어서 플레이한다. 명성과 신앙심을 얻는 방식은 다양한데, 타 세력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경우 전투의 크기에 따라 명성을 얻고, 적이 이교도인 경우에는 신앙심도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전쟁 전체와 공성전도 포함한다. 또한 소유하고 있거나 휘하에 두고 있는 작위의 숫자에 비례하여 매달 명성을 얻는다. 공화국 가문의 경우 보유한 재산에 따라 비례하여 매달 얻는 명성이 증가하고 공화국 차기 원수(도제: Doge)를 뽑는 기준이 명성[* 명성 수치가 그대로 반영되는 건 아니고 다른 수치로 환산되어 적용되는데 명성 수치에 비례한다.] + 나이[* 나이가 많을수록 점수가 올라간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예를 들자면 단돌로 가문의 당주가 50세이고 모로시니 가문의 당주가 55세라면 모로시니 가문의 당주 쪽이 이 점수가 더 높다.] + 선거 자금이기 때문에 명성 관리가 상당히 중요하다. ~~물론 현금 박치기가 답이긴 하다~~ 그리고 특정 이벤트가 발동되면 신앙심이나 명성 수치를 획득하거나 잃기도 하는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다. * 게임 오버 플레이 캐릭터가 죽고 그 뒤를 이은 후계자가 당신의 가문이 아니거나,[* 외손자, 외조카 등도 혈족이지만 가문이 다르면 남아있어도 게임 오버이다. 단, 모계 결혼으로 생긴 경우는 예외다.][* 쉽게 설명하면 후계자 색이 빨간색으로 강조되어 있는 상황에서 승계될 경우 게임 오버다.] 혹은 플레이 캐릭터가 백작 이상의 작위를 모두 빼앗기면 그 순간 게임 오버가 된다. 단 공화국의 가주들은 가주 자체가 남작급의 작위지만 예외적으로 백작급의 지위로 인정되기에 공화국 선거에서 패배해도 게임 오버가 되지 않는다.[* 공화국 도시 귀족 작위는 시스템적으로 남작급 작위로 취급되지만, 플레이 가능 작위이기 때문에 그것만 가져도 게임 오버 되지 않는다. 게임 진행 조건 역시 '백작급 이상의 작위를 가질 것'이 아니라 '플레이 가능 작위를 가질 것'이니 참고하자. 즉, 남작급 작위라도 플레이 가능 작위를 가졌으면 게임을 계속할 수 있고(물론 오리지널 기준으로 플레이 가능 남작위는 도시 귀족 가주 뿐이다.) 백작 이상이라도 플레이 불가능 작위(대표적으로 교황 등 신정 국가 작위)밖에 없으면 게임 오버된다.] 개발 초기에는 남작급 작위도 플레이할 수 있게 하려 했으나, 남작급 작위 중 유일하게 플레이 가능한 공화국 가주들만 봐도 워낙 플레이할 요소가 없다. 거기다 캐릭터가 너무 많아져서 시스템 사양을 고려하여 원만한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백작 이상으로 조정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게임 오버시 그 시점까지 플레이어가 쌓아온 가문 점수에 따라 보여주는 역사적 가문들의 목록과 그 설명이다. || 가문 점수 || 역사적 가문 || 가문 설명 || || ~999 || 가문없음 || (점수: ~ 점) 아무런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 || 1000~1999 || 바벤베르크 가문 || 당신은 ~ 점으로 바벤베르크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바벤베르크 가문은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 [[오스트리아]] 지역을 통치한 귀족 가문입니다. 특이한 점은 같은 시기에 바벤베르크 가문이라는 또 하나의 동명의 가문이 존재했다는 사실인데, 이 가문은 소영주에 불과하였으니 이들이 더 뛰어난 업적을 세우거나 이들보다 약체였다면 분명 역사는 후자의 바벤베르크 가문만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 || 2000~4999 || 고드윈 가문 || 당신은 ~ 점으로 고드윈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고드윈 가문은 한차례 [[영국]]의 왕을 배출한 적도 있는 가문입니다. 비록 짧지만 [[해럴드 2세|해럴드 고드윈]]이 1066년 1월 5일부터 1066년 10월경 전장에서 사망하기까지 영국의 왕으로 지낸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선왕인 [[참회왕 에드워드]]가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잠시 의식이 돌아온 사이 해럴드를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점에서 부자연스러운 승계였고, 따라서 [[윌리엄 1세|노르망디공 윌리엄]]이 [[헤이스팅스 전투|왕위를 주장하여 일으킨 내란]]에서 해럴드는 그의 칼에 찔려 처참히 사망하고 왕위를 내주게 됩니다.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해럴드의 두 형제도 그 전장에서 사망했다는 것인데, 이로써 후계자를 모두 잃은 가문은 1066년 10월 해럴드의 폐위와 함께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 || 5000~7499 || 몽포르 가문 || 당신은 ~ 점으로 드 몽포르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몽포르 가문은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국]]에 걸쳐 방대한 지방을 다스린 귀족 가문입니다. 이 가문은 초기에 프랑스의 소영주에 불과했으나 [[정략결혼]]과 [[십자군 원정]]에서 세운 공으로 각각 잉글랜드와 프랑스 남부의 영지를 받았습니다. 또한 13세기 가문의 잉글랜드 백작 [[시몽 드 몽포르]]는 [[헨리 3세|잉글랜드 왕]]의 실정에 불만을 품어 [[제2차 남작 전쟁|1262년 반란, 왕을 포로로 하기도 하였으며]] 1265년 귀족 출신에게만 제한되어 있던 [[의회]]에 기사, 시민 등 각 계층의 대표를 참석하게 하여 [[대의민주주의]]의 출발을 알리기도 한 인물입니다. || || 7500~9999 || 체링겐 가문 || 당신은 ~ 점으로 [[von|폰]] 체링겐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체링겐 가문은 962년부터 1218년까지 [[독일]] 남부의 여러 지방을 다스린 귀족 가문입니다. 이 가문은 11세기 [[베로나]] 공작, 케른텐 공작 작위를 받아 두 공작령의 대공을 배출하였으나 황제가 추가로 약속했던 작위를 수여하지 않자 불만을 품고 11세기 중엽에 봉기를 일으켰다가 패배해 가지고 있던 작위와 영지를 대부분 몰수당했습니다. 그 이래로 1218년 단절되기까지 [[슈바벤]]의 백작으로 있었습니다. || || 10000~14999 || 즈네브 가문 ||당신은 ~ 점으로 드 즈네브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즈네브 가문은 10세기부터 1401년까지 [[제네바]] 백작령을 다스린 귀족 가문입니다. 오랜 기간 백작이란 작위를 유지한 가문으로 별다른 문제에 휘말리지 않고 순탄하게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14세기에 들어 후계자를 예기치 못하게 잃자 1394년에 단절되었고 백작 작위와 영지는 재판을 걸쳐 1424년 협력관계에 있었던 [[사보이아 가문]]으로 넘어갔습니다. || || 15000~19999 || [[벨프 가문]] || 당신은 ~ 점으로 벨프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벨프 가문은 1198년에 한 차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배출한 적 있는 귀족 가문입니다. 이 가문이 가장 융성한 시기는 12세기의 [[하인리히 사자공|하인리히 공]]으로서, 당시 [[호엔슈타우펜 왕조|슈타우펜 왕조]]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신성 로마 제국)|프리드리히 1세]]의 [[이탈리아]] 정책에 협력한 공으로 [[바이에른]]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비운의 시기이기도 했는데 이는 나중에 황제의 제5회 이탈리아 정복에 수행하기를 거절하여 재판에 부쳐진 결과 영지몰수, 제국추방 등의 형에 처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인리히공은 이후에 영국에 피신했다가 3년 뒤 1183년 다시 독일로 돌아와 몰수되었던 영지 중 일부를 회복하였고 1195년에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리고 1198년 그의 후계자 [[오토 4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하게 됩니다. || || 20000~29999 || 비엘보 가문 || 당신은 ~ 점으로 아프 비엘보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비엘보 가문은 13세기부터 14세기 중엽까지 [[스웨덴]]을 통치한 왕가입니다. 이 왕가가 출현하기 전까지의 스웨덴은 국왕이 존재하는 통일국가이었으나 왕위는 [[선거군주제|선거제]]로 권한이 미미했으며 과거 부족대립이 뿌리깊게 남아 이름만 통일국가이고 실질적으로는 부족의 독립성이 강한 [[연방국가]]였습니다. 이때 왕권을 다지고 [[중앙집권국가]]로 국가통일을 이룩한 왕조가 비엘보 왕조입니다. 더 나아가 [[핀란드]]를 정복하여 국력을 크게 신장하기도 하였습니다. || || 30000~39999 || 에스트리드 가문 || 당신은 ~ 점으로 에스트리드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에스트리드 가문은 [[덴마크]]의 가문으로 1047년부터 1412년까지 덴마크를 통치한 왕가입니다. 특히 덴마크는 12세기에 전국적으로 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교회가 널리 확대됨에 따라 왕가와 귀족, 교회세력 간 갈등이 상당하여 혼란기를 겪었는데, 이때 끝가지 왕좌를 지켰다는 사실은 놀라운 공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 || 40000~49999 || [[플랜태저넷 왕조|플랜태저넷 가문]] || 당신은 ~ 점으로 플랜태저넷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플랜태저넷 가문은 프랑스 서부 [[앙주]] 지역을 다스렸던 [[앙주 가문|귀족 가문]]에 기원을 두고 있는 영국 왕가입니다. 가문의 설립자인 [[앙주 백작]] 조프루아는 영국 왕 [[헨리 1세]]의 딸이자 후계자인 [[마틸다(잉글랜드)|마틸다]]와 결혼하여 [[노르망디 공국]]을 상속해 영국의 가신이 되는 한편, 훗날 영국의 왕위를 계승할 [[헨리 2세]]를 출산합니다. 1154년 헨리 2세가 왕위를 계승하고 비로소 영국의 왕가가 된 플랜태저넷 가문은 수 세기 간 가문 영토를 확장하며 영국은 물론 프랑스 내에도 넓은 영토를 차지했는데, 이가 결국 프랑스와 영국 왕가간의 마찰을 빚어 [[백년전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 || 50000~59999 || [[콤네노스 왕조|콤네노스 가문]] || 당신은 ~ 점으로 콤네노스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콤네노스 가문은 가문의 초대 황제인 [[이사키오스 1세]]가 1057년 쿠데타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에 즉위하면서 왕가가 된 가문입니다. 쿠데타 후 콤네노스 왕조는 1세기간 제국을 통치했는데, 그동안 왕조의 군대가 제국의 안보를 확립하였기에 다시금 비잔티움 문명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드로니코스 1세|콤네노스 왕조의 비잔티움 마지막 황제]]는 가문의 초대 황제가 그런 것처럼 반대로 1185년 반란 세력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콤네노스 왕조가 단절되진 않았습니다. 1204년 가문의 일족이 [[트라페주스]]를 점령하고 [[트레비존드 제국]]을 세워 왕조를 이어나간 것이지요. || || 60000~69999 || [[피아스트 왕조|피아스트 가문]] || 당신은 ~ 점으로 피아스트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피아스트 가문은 9세기 무렵 무수한 부족을 정복해 [[폴란드]]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왕국을 건국한 왕가입니다. 이 왕조는 14세기에 왕국 내 지속하던 [[봉건]]분열상태를 해소하고 국력을 신장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피아스트 가문의 일족은 또한 신성 로마 제국의 [[실레지아]] 공작 칭호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 || 70000~79999 || 이브레아 가문 || 당신은 ~ 점으로 디브레아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이브레아 가문은 중세 유럽 여러 국가의 왕을 배출한 명망 높은 왕가로, 비록 11세기 중엽에 왕가에서 소영주로 전락한 역사가 있지만 이후 정략결혼을 통해 [[카스티야 왕국]]과 [[레온 왕국]]을 통치하며 위기를 잘 극복해낸 가문입니다. || || 80000~89999 || [[류리코비치|루리코비치 가문]] || 당신은 ~ 점으로 루리코비치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루리코비치 가문은 9세기 경 루스땅(지금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정착한 스웨덴계 [[바이킹]] [[류리크]]의 후손입니다. 후손들의 분할 상속으로 인해 영토가 쪼개졌고 가문원들은 끊임없이 반복했습니다. 이로 인해 13세기 [[몽골]]의 침략에 대처할 수 없었고, 대공국들은 [[징기스칸]]의 손자 [[바투]]에게 하나씩 무너져 몽골의 [[조공국]]으로 전락했습니다. 하지만 가문 자체는 살아남았고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 || 90000~99999 || [[합스부르크 가문]] || 당신은 ~ 점으로 폰 합스부르크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폰 합스부르크 가문은 10세기 [[알자스]]에서 북[[스위스]]에 걸친 소영주에서 비롯된 가문입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1066년 당시 가난한 가문에 속하였는데 [[대공위시대]] 뒤에 실력 있는 국왕의 출현을 꺼린 독일 제후가 13세기 중엽 이 집안의 [[루돌프 1세]]를 국왕으로 선출하면서 번영의 길로 들게 됩니다. 이후 합스부르크가는 정략결혼을 통해 영지를 넓히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선출에도 개입할 정도의 큰 세력으로 부상합니다. 이러한 기초를 바탕으로 한때 가난했던 합스부르크가는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왕가의 명맥을 이어나갔습니다. || || 100000~ || [[카페 왕조|카페 가문]] || 당신은 ~ 점으로 카페 가문보다 점수가 높습니다. 카페 가문은 987년 가문의 초대 국왕인 [[위그 카페]]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하면서 새로 세운 왕가입니다. 이 왕조의 직계 후손은 1322년까지 존속하여 1338년 종말을 맞지만, 방계 가문, 즉 [[발루아 왕조|발루아 왕가]]와 [[부르봉 왕가]]는 여전히 남아 각 국가의 왕으로서 프랑스, [[포르투갈]], [[나폴리 왕국|나폴리]], [[헝가리]], [[나바라 왕국|나바르]]를 통치하였고 또한 [[브르타뉴]], [[부르고뉴]], 부르봉, [[프로방스]], [[아카이아 공국]]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중세 유럽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가문이지요.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